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광래호/2011년 한일 친선전 (문단 편집) == 서막 == 사실 경기가 치러지긴 전 이미 징조가 보이긴 했다. 먼저 [[조광래]]의 대표팀 감독 3번째 경기가 한국에서 열린 한일전이었는데, [[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]] 직전에 [[박지성]]의 산책과 더불어 일본을 탈탈 털어대던 경기력은 어디가고 조광래만의 포지션 놀이와 그가 원하는 패스축구를 하다 도리어 일본한테 패스 교육을 받으면서 이렇다 할 찬스 없이 0대0으로 비겼다. 그리고 [[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]] [[2011년 AFC 아시안컵/4강&결승#s-1.1|4강전]]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올스타를 출전시켰음에도 그가 원하는 점유율은 오히려 일본에게 밀리며 연장 후반에 어찌어찌 극장골을 넣어 간신히 [[승부차기]]까지 끌고 갔더니 [[삼연뻥|3연속 실축]]으로 일본한테 결승 티켓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. 그리고 삿포로 원정 당시엔 [[박지성]]과 [[이영표]]가 대표팀 은퇴를 한지 얼마 안 되었고, 부상으로 인해 [[이청용]]과 [[지동원]], [[손흥민]]이 빠진 상태였다. 반대로 일본은 불과 1년 3개월전 박지성과 [[박주영]]의 득점으로 [[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]]에서 일본의 콧대를 꺾은 그 경기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듯이 베스트 11중 7명을 유럽파를 채워 넣은 초호화 멤버를 꾸렸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attachment/삿포로 참사/8.jpg|width=100%]]}}} || 처음엔 이전 두 번의 한일전처럼 그럭저럭 괜찮게 붙었다. 그러나 전반 25분 왼쪽 수비수였던 [[김영권]]이 발목 부상으로 조기 교체되는 이상 징후가 발생했으며, 김영권의 교체로 들어간 [[박원재(1984)|박원재]]마저 얼마 되지도 않아 [[엔도 야스히토]]의 강슛을 머리로 막다가 가벼운 [[뇌진탕]] 증세를 일으켜 다시 박주호로 교체되는 바람에 수비진이 급격히 무너졌다. 교체카드를 왕창 쓴 직후부터 그나마 생긴 유기적인 움직임은 그대로 실종되고 수비하기에만 급급하다 전반 35분, [[이근호]]가 수비하면서 공을 따내 역습하려다 실수로 인해 일본한테 다시 공이 넘어갔고, 그대로 득점으로 연결 시키면서 선제골이 나왔다.[* 이근호의 실수도 있지만, 자세히 살펴보면 기성용의 아무 생각 없는 전진 수비로 공간이 텅 비어버리는 바람에 카가와 신지가 손쉽게 공간 침투 후 선제골을 넣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